서문
몇 달 전 도서관에서 노트법에 관심이 많은 나의 시선을 훔친 책이 있다. “탁월함에 이르는 노트의 비밀”이라는 책이다. 비록 이 책은 "노트만 잘하면 천재가 된다"고 당차게 운을 땐 후 “노트가 전부는 아니더라” 라는 식의 용두사미 전개로 안타까움을 자아냈지만, 나의 몇 가지 노트 습관을 개선해 주었다. 이 글은 그 이후 노트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노트의 역할
먼저 노트의 역할을 분명히 해야겠다. 노트는 사고력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먼저 효과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거기서 노트가 보조할 수 있는 사고의 영역을 찾아야 한다. 노트가 보조할 수 있는 사고의 영역엔 기억력과 집중력이 있다. 사람이 망각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 것이다. 망각하는 이유에는 소멸론과 간섭론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이는 차치하고 생각보다 망각의 주기가 짧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독일의 심리학자인 에빙하우스가 제시한 망각 곡선은 무작위적인 정보를 접한 일반인의 망각 주기를 나타내는데, 그 주기라는게 고작 10분이다. 10분이면 잊어먹는 것이다. 또한 기억은 상당한 정신력을 소모하게 하는데, 예를들어 누군가 무작위로 5개의 과일이름을 불러주고 노트 없이 순서대로 기억하라고 하면, 그것을 기억하는데 정신력을 쏟느라 다른 일을 허투로 하게 된다. 하지만 노트를 하면 기억할 필요가 없으니 바로 다른 일에 정신력을 쏟을 수 있으며(집중력 향상), 필요할 땐 언제든 다시 찾아볼 수 있다(기억 보조).

사고의 두 단계
노트법에 앞서 사고 과정을 살펴 보자. 사고 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뉜다. 반복적으로 질문하며 원하는 답을 찾는 단계, 그리고 거기서 얻은 것들을 재사용 가능하게 정보화하는 단계이다. 각 단계는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고 당연히 노트법도 다르다. 이제 각 단계의 특징을 정리하고 적합한 노트법을 설명하겠다.

첫 단계: 브레인스토밍
반복적으로 질문하고 답을 찾는 단계를 편의상 브레인스토밍 단계라고 하자. 브레인스토밍 단계는 의미있는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의미있는 질문을 발견하고 거기서 또 생각을 확장한다. 여기서 노트의 역할은 기존의 질문과 답들을 보존해 새로운 질문들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필요할 땐 언제든 기존의 질문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때 상기해야 할 점은 노트는 어디까지나 생각의 보조도구라는 것이다. 노트가 생각의 속도를 늦추는 정도가 기억과 집중의 이점을 넘어서기 시작하면 오히려 사고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노트가 사고를 돕기는 커녕 방해하진 않는지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 때의 노트는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방사형식으로, 그리고 짧지만 많은 생각을 함축하는 “키워드” 중심으로 하는 것이 좋다. 개중 시각적 묘사가 필요하면 그림을, 이전 답들과 연관되는 부분은 선으로 연결을, 강조할 부분은 별표시나 문장으로 표현을 할 수도 있다. 어쨌든 노트법의 핵심은 확장 가능하게, 자유롭게, 명확하게, 빠르게. 이를 만족하는 브레인스토밍의 대표적인 방법으론 토니 부잔이 대중화 시킨 마인드맵이 있다.

둘째 단계: 정리
고품질의 정보를 추출하는 단계는 짧게 정리 단계라 부르자. 이 단계는 브레인스토밍 과정에서 얻은 지혜와 고급지식을 추려 후에 참고가능한 형태로 만드는 것으로, 나중을 위한 것이다. 여기서 정리된 것들은 지혜와 고품질의 정보가 되어 비슷한 문제를 해결할 때의 소스로 쓰인다. 정리 노트를 만들 때 불필요한 정보는 과감히 제거, 반복되는 정보는 통합, 늘어진 질문들은 연관관계를 따져 수평/수직구조화 한 후, 가급적 선형으로, 그리고 문장으로 표현하여 정리하면 좋다.  선형과 문장은 방사형과 키워드의 조합과는 달리 의식적으로 질문을 닫고 추가 확장을 막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리 노트는 가급적 전자 문서화 하는게 좋은데, 이는 접근성이 뛰어나고 수정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엔 고품질의 클라우드 서비스들(인터넷상에 존재하는 개인 저장소)이 많이 나왔는데, 덕분에 인터넷이 가능한 곳이라면 어디서든 개인화된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무료인데 이를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나도 노트에 특화된 에버노트라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는데 무척 좋다.

정리
이래저래 말 많았지만 결론은 단순하다. 열심히 생각해서, 깔끔하게 정리하는것. 열심히 생각할 때 노트를 잘 활용하면 "생각의 전개를 효과적으로 보조"해 줄 수 있다. 그리고 사고 과정으로부터 “고품질의 정보"를 남기면 나중에 다른 문제를 해결할 때 참고할 수도 있다. 노트의 전문가의 말처럼 천재는 노트법 때문에 천재가 아니고 그냥 날 때부터 천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포츠도 아닌데 굳이 천재적인 우사인볼트 같은 사람과 맨발로 경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당당히 노트로 무장하고 나아가자.